본문 바로가기

고린도전서

바울의 자기 변호(고린도전서9:1-15)

바울의 자기 변호(고린도전서9:1-15)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서의 자기 변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에 대하여 힐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바울을 비난하는 교인들이 있었는데 3절에서 바울이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 할 것이 이것이니'란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 대해 자신의 사도직을 방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응당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천명하고 그러나 바울이 이런 권리를 사용치 않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1. 바울의 사도직


  1절에서 항변하는 듯한 바울의 변호는 울분에 찬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한편 처절하기조차합니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고 힐문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자유자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새로 얻은 자유를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에 얽매어 복음의 거침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형제

들의 믿음을 위해 그 자유를 절제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자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사도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사도임을 확신하고 이 사실을 당당히 주장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엔 바울이 사도로서의 사명을 가졌을 뿐 아니라 사도로서의 권한도 행사할 것이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사도인 사실의 증거를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생존시에는 주님을 보지 못했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늘 보좌에서 바울에게 나타내신 주님의 부활의 모습을 밝히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 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게 되었고 그 부활의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란 바로 주님의 부활의 중인인 것입니다.
다음에 바울은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예수를 영접하게 한 장본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2절에서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큰 권능을 주셨고 희한한 이적을 행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나중에 거짓 선생이 나타나 바울의 사도직에 이의를 제기하고 배척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2. 사도로서의 바울의 권리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행하는 자세에 대해 힐문한 사실을 이곳에서 조목조목 따지면서 자기를 변명하고 있습니다.
① 첫째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고 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바울처럼 자비량하는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비량 목회를 하므로 사도로서의 권위가 없는 듯 보였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을 부인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변호함에 여러가지 성경적 증거를 들었습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군인은 나라의 녹을 먹고 나라를 지킵니다.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바울은 군사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성도들을 포도로 비유하고 그들의 구원과 영적 성장을 실과와 비유해서 복음을 진하는 자들은 성도들의 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 준 것입니다.
바울은 '곡식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그 수고의 대가를 받는 일과 연결된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11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다른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자신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도 있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고 했습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나타나 교회를 소란케 하는 몇몇 무리들도 이런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물며 우리일까 보나'고 말하므로 바울의 위치가 고린도 교회 안에서 그들 거짓 선생 보다 얼마나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알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12절에서 '그러나 우리가 이런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 바울의 자기 변호의 목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거나 사도로서의 권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없기 위해 이런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았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에 바울의 위대한 목회자 상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의 진정한 사도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바울의 믿음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