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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고린도전서10:31-3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고린도전서10:31-33)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거나 다른 사람의 양심에 상처를 주는 일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이나 불신자들의 관심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이나 어떤 습관적인 생활 양식에 대해 그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좇아 살아가는 일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생명의 길에 인도하기 위해서는 덕을 세우고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덕과 사랑으로 자기 자유를 절제하는 일은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따라가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일로 이방인들의 판단을 받는 일이 복음을 위한 핍박을 받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근원적인 삶의 방향을 31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한 것입니다.

 


1.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사업을 성공시키느냐 못시키느냐 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자기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첫째 과제입니다.
이것을 제쳐놓고는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그 일로 아무런 상급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첫째로 순종의 생활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준 일이 없는 순종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계략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죄 값으로 죽는 가장 비참한 자리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누구나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만났을 때 최선의 방법은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어디 있을 것인가를 알고 그 뜻에 따르는 일입니다. 자기의 뜻은 육신의 생각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낼 수 있는 방법은 그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배우면 내주 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덕을 세우는 일과 사랑으로 행하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바울은 32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나'란 표현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헬라인에게나'란 말은 이방인을 뜻하며 '하나님의 교회에나'란 교회나 또는 믿음의 형제들을 일컫습니다.
여기서 '거치는 자'란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말로 상대방으로 실족케 하는 일을 말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거치는 자라고 한 말은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결코 거치는 자가 되어 그들로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길을 막으면 안됩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33절에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이처럼 간곡하게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훈해 주는 목적은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까지 라도 유보하고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절제하는 것은 우리가 약해서도 아니오, 이방인들이 두려워서도 아니라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나 권리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짓입니다.
바울은 '나와 같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일에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바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9:18절 이하에서 자신이 자기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고 전제하고 자신의 자유를 속박한 것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율법 없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으며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바울의 생활은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며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 우리가 자기와 같이 한 생명이라고 구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바울의 교훈을 거울삼아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