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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남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 태도(고린도전서10:19-24)

남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 태도(고린도전서10:19-24)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자기 하나만의 생활이 아닙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몸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우리라고 하는 한 몸은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지체들이 융화되고 온전한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되려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바로 이런 점에 유의하여 우상 숭배 행위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해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귀신에게 하는 이방인의 제사


  바울은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의 영적 배경을 여기서 밝혀 줍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나 우상의 제물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사실인즉 그 배후에는 귀신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0절에서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섬기던 우상은 쥬피터(Jupiter) 아폴로(Apollo) 비너스(Venus) 등, 신화에 근거한 존재들로 실존하는 신이 아닙니다. 우상 그 자체는 나무나 돌이나 철로 만든 그 형상 자체일 뿐 다른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거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우상을 만든 사람들이 우상을 신적 존재로 숭앙한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그 신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으로 사탄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비록 아무 것도 아니로되 그곳에 경배하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들은 악한 영적 존재외 교제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사악한 일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는 죄익인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걸과적으로 귀신에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제사에 참여 하는 자는 귀신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이란 다이몬으로 악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악령이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저급한 이방신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우상 숭배에 참여하고 그들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담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종하기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은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잔은 성찬을 의미하고 귀신의 잔은 우상의 제물을 말합니다. 주의 상과 귀신의 상도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인간은 두 주인을 신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겸하여 귀신을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잘못된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런 일은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우리기 이런 일을 하므로 주님을 격노케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 티끝만도 못한 존재요 그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거늘 어찌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겠느냐는 책망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절세 생활


  바울은 23절과 24절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미덕으로 절제 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는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씀해줍니다.
바울의 이 말은 이미 6:1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을 되풀이하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는 같은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합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있습니다.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도 우상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그 제물 역시 하나의 음식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에 대하여 제한을 받음이 없이 자유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인적인 자유가 공동 생활에 제재를 받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 제재는 속박인 것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일로 절제에 속합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우상 수배나 그의 제물에 대하여 자유할 수 있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자유를 과용한다면 그들을 실족시킬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는 의도는 그들이 가졌나고 하는 자유도 잘못된 지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좀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론 :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신앙적인 자유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덕을 세 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덕을 세우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신앙적인 자유를 유보하는 일은 이름다운 일입니다. 바울은 덕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 '남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함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을 이런 차원 높은 곳에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