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간의 송사(고린도전서6:1-11)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이 지적하고 책망한 대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교인들 간의 소송 문제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시기와 분쟁이 계속해 일어나고 각가지 죄악이 범람한 가운데서 혼란을 거듭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문제를 교회 안에서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끌고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교회의 수치를 드러내 놓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런 처사에 대해 질책하면서 2절에서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1. 성도의 송사에 대한 경고
바울은 1절에서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분쟁이나 다툼이 있을 때 그 송사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살아갈 사람들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판단을 받을 사람들이 아니요 오히려 세상을 판단할 사람들입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능히 그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과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의 말씀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도는 천사들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3절에서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서 판단한다는 말은 그들을 우리가 심판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천사의 행위까지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 천사들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들의 행실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들이 이처럼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자리에 있거늘 하물며 교회 안에서 세상에 관계된 사건이 있을 때에, 그 문제를 교회안에서 해결하려하지 않고 교회에서 경히 여기는 자들,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고 속죄도 받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을 그런 자들의 판단을 받기 위해 세상 법정으로 끌어가느냐고 책망한 것입니다.
(4) 형제간의 송사에 대해 바울은 7절에서 '너희가 피차 송사 함으로 너희 가운데서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같은 형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 하는 일은 그 자체가 완연한 허물이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재판에 송사 하여 이기기보다는 불의를 당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당한다는 말은 불이익이나 손실을 말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
바울은 8절에서 형계를 송사 하는 일은 서로 속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런 일에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반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불의한 자에 대해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2) 그런데 다음 11절에 나오는 말씀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런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런 자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되기 이전에는 어둠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죄 가운데서 살아갔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죄악에 물든 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에서 성도들간의 송사를 이런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서야 되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지난날에 이처럼 죄악 가운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형제들의 죄에 대해 관용하고 사랑을 베풀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형제의 허물을 정죄하거나 법적인 심판을 내려 그 사람으로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어 회개의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결론 : 이런 사람들도 우리의 지난날과 같이 회개하여 돌이키면 새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싱령 안에서' 능히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난날에 하나님을 모르고 범죄했을 때의 일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 후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처럼 범죄한 형제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그들로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교회에서 권면하고 징계해야지 사회 법정에서 심판을 받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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