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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고린도전서3:1-4)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고린도전서3:1-4)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대할 때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대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도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어린아이들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기와 분쟁으로 교회를 어지렵혔으니 이는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장성한 자에게 먹이는 밥을 먹이지 아니하고 어린아이들에게 먹이는 젖으로 먹였다고 한 것입니다.


1. 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인들을 한 마디로 말해서 육신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1절에서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인들에게 대하는 일에 차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령한 자들을 먹이는 일과 육에 속한 자들을 먹이는 일은 차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자들이란 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앙적으로 장성한 자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초보적 단계를 지났습니다. 이들은 좀더 깊은 은혜의 단계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장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1) 그리스도를 아는 신령한 지식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은 학교에서나 학문으로 배울 때 성장하지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 가운데 자라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주의 종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2) 다음에 말씀의 맛을 보는 가운데 성장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떡이라면 그 맛을 볼 뿐 아니라 먹어야 하는데 이 먹는 일이 곧 순종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자기 생활에 적용시켜 체험해야 합니다. 이 같은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은혜 생활인데 이 은혜 생활이 우리로 신령한 자로 성장케 합니다. 순종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유치한 자리에 머물러 장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믿음과 순종이 함께 따를 때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2. 육신에 속한 자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육신에 속한 자란 믿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도 육신에 속하여 신령한 자란 이름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대할 때 신령한 자들처럼 대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어린아이의 단계를 거처야 합니다. 중생이란 새로 태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는데도 어린아이의 자리에 계속 머물러있는 다면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문제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에 당파를 만들고 서로간 시기하고 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2) 이들은 젖을 먹여야 할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나이로 보아 분명히 밥을 먹여야 할 시기에 이르렀는데도 밥을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젖을 먹는다는 말은 기독교의 초보적인 지식이나 배워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도 말씀의 깨달음이 부족하고 들어도 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든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의 맛도 모르는 것입니다. 순종도 못합니다. 그들이 가진 특색은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3) 육신에 속한 자들은 특색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령한 일을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젖이나 먹으면서 애들처럼 육신의 일이나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들은 시기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교회에 화평이나 사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대신에 시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기의 특색은 미움이며 미움은 곧 분쟁을 가져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따라 행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정상적인 신앙 생활이 것만 이들은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말은 사람에 이끌려 파당을 형성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자기가 속한 파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이르기를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 라하고 다른 이는 아볼로에게 라 한다'고 했습니다.


결론 : 이들은 이처럼 사람을 따라 행하며 움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신령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생활도 신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젖을 먹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신령한 자의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