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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사랑하는 자녀 같은 권면(고린도전서4:14-21)

사랑하는 자녀 같은 권면(고린도전서4:14-21)

 

  바울은 아직까지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심한 꾸지람을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위로하는 말투로 14절에서 이처림 말씀해 줍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자녀 같이 사랑하였기에 책망한 것입니다. 잠6:23절에서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같은 책망은 고런도 교인들로 능히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본 수 있게 하였고 그들로 회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1.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도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자녀처럼 대했고 자녀치럼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아래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였고 개적 초기에 함께 눈물을 뿌리며 복음의 터를 닦고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자기가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다고 하는 자부심입니다. 15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거듭나게 했거나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아비의 입장에 있다면 그는 자녀들에게 당연히 책망과 권면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많은 스승이 있습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받을 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스승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영접하게 하는 일은 여러 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런 역할을 그들에게 했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16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 말씀해 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 앞에서 부끄러운 행실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에 본을 보여주기 위해 힘썼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기 위해 모든 일을 삼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선생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바울처럼 교인들을 항하여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런 짐을 지지 않고 교인들에게만 호령 치고 짐을 지우는 일은 바리새인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눅11:46절에서 처럼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짐에 대지 않는 도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이처럼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2.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바울은 20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한 말이 그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데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영원한 기업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로 천국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현세적인 하나님의 나라인데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후자에 속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담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교만했고 파당을 조성했으며 분쟁을 일으키고 교권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들에게 주신 영적 은사에 있어서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교만과 자랑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적용 될 수없는 허황된 말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말은 구원이나 믿음이나 은사 면에 있어서 미사여구로 듣기는 좋았지만 실인즉 아름답게 포장된 헛된 말일 뿐,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같은 어황된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이 있다 고 했습니다. 실천력이 없는 언어의 구사는 시끄러울 뿐이요 교회로 요란하게 하여 분쟁을 일으킬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나.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믿음을 보시고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고 칭찬하섰습니다.

결론 : 교만한 자들은 말로만 한목 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능력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일, 겸손하여 자기를 낮추는 일,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일은 능력에서 나옵니다. 이런 능력을 받기위해 기도하고 이런 능력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말 때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