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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에 장성한 자가 되라(고린도전서14:20-25)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되라(고린도전서14:20-25)


  바울은 20절에서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되는 방법으로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했습니다.

 


1.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한 바울의 말은 한 마디로 방언을 자랑하지 말고 절제하라는 의미의 권면입니다. 그러면 왜 바울이 여기서 악과 어린아이를 연관시킨 것입니까? 어린이는 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교만이나 자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방언의 은사를 으뜸가는 은사로 오해해서 방언을 강조했고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신앙을 무시할 정도로 자랑을 하면서 교만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 같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자란 말은 '어떤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혜가 장성하지 못하면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믿음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고린도 교회의 영적 혼란은 지혜가 장성하지 못한데서 온 것입니다. 은사를 교회에 주신 목적을 안다면 결코 그 은사로 자랑하거나 교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를 사용하는 일에 사랑과 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방언의 은사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절제 없는 방언과 통역 없는 방인으로 길게 말하는 것을 자랑했기 때문에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야만이란 말로 나무라고 통역 없는 방언에 대해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구약 이사야서에서 인용한 말씀을 가지고 방언이 이스라엘에게 유익되지 못했던 사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사28:11-1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선지자들을 통해 들려주신 말씀을 듣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앗수르 사람들로 그들을 핍박케 하셨는데

그들의 말이 이스라엘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었지만 이런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2. 방언과 에언


  22절에서 바울은 다시 한번 방언과 예언에 관한 은사를 비교하면서 교회에서 예언을 권장하고 방언을 절제해야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말은 표적이 된다는 말로 아직까지 들어보지도 못했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이상한 말을 하게 하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표적으로 작용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구원의 도리를 밝히고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선언하며 회개하기를 권면합니다. 예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예언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을 듣는 자는 교회 성도들이며 성도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며 죄를 지적받아 회개하게 되고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이 됩니다.
23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무식한 자란 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을 말합니다.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이란 표현은 고린도 교회가 모두 방언의 은사를 자랑하고 방언을 가장 우월한 은사로 여기는 나머지 모든 교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한 방언으로 말한다면 결과적으로 미쳤다는 평가를 받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본인도 모르고 듣는 이들도 모르는 말을 온 교회가 떠드니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바울은 이런 방법으로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을 하면 그 권면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그 말씀을 알아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은 19절에서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낳다'고 하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처럼 활륭한 예언의 은사를 멸시하고 방언의 은사를 우위로 세워 혼란을 가져온 일에 대하여 이처럼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언제나 교회의 덕을 세우며 성도들 간에 사랑으로 화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고린도 교인들처럼 은사를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되며 교회를 혼란케 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유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